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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칼럼] 왜 하필 영어일까

2016.03.09

원어민에게도 난해한 공무원 영어시험, 필기시험 본연의 목적 다시 찾아야

기자는 민폐를 업으로 한다. 누군가는 쉽게 건네지 못하는 질문을 대신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세상에 떠벌리는 것이 그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수가 필요로 하는 정보라면, 그것이 공익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질문을 받는 당사자가 불쾌감을 드러내더라도 질문을 던져야한다.


그러면서도 윤리가 배제된 취재행위만을 좇는 ‘기레기’는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적어도 기자 본인에게 있어 ‘질문하기’는 그래서 아직도 어려운 기본기 중 하나다.


특히, 시험장 취재는 일상적이지만 항상 조심스러운 과제다. 시험장 한 곳에서만 약 천여 명의 응시자들이 짧게는 100분, 길게는 200분 동안 자신의 인생을 건 도전을 펼친다. 자신의 미래가 몇 시간의 시험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비참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그렇다. 그 절박함과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시험장에선 눈치껏, 필요한 질문만을 던진다.


그런데 지난주 법원직 9급 시험은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 순간이었다. 교양과목과 헌법시험이 끝난 점심시간, 어떤 이는 응시자들의 발길이 뜸해진 복도에 힘없이 주저앉아 1교시의 무게를 온 몸으로 짊어지기도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창밖을 응시하며 흐느끼기도 했다. 다른 곳에서 시험을 치른 지인과의 통화에 점심시간을 할애하는 한 수험생의 목소리는 불안을 떨쳐내려는 절박함으로 들렸다. 점심식사를 위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수험생들 속에 조용히 가방을 챙겨나가는 응시자들의 뒷모습은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오전을 보냈는지 짐작케 했다.


응시자들이 나누는 대화의 8할은 ‘영어’였다. 해석에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글의 순서를 묻는 문제가 많이 나와 시간안배에 실패했다는 수험생의 사연들이 귓가에 꽂혔다. 영어가 공무원 시험의 대표적인 민폐과목이 된 지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건만, 새삼 의문이 생겼다. 왜 하필 영어일까.


사실, 영어는 공무원으로서 직무수행을 함에 있어 그리 활용도가 높은 과목이 아니다. 업무를 처리하면서 외국인을 상대할 일이 많지도 않거니와 실제 시험에 나오는 수준의 어려운 어휘를 접할 일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매년 시험엔 원어민이 봐도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의 복잡한 문장과 생소한 어휘가 나온다. 그렇게 쓸데없이 어려운 영어로 인해 공직의 꿈을 품은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꿈을 포기한다.


물론, 경쟁률이 높아 문제를 어렵게 낼 수밖에 없다는 임용기관들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직무 활용이나 전문성 향상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과목을 쓸데없이 어렵게 출제하는 것은 임용기관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 예비공직자들의 경쟁력 향상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영어를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실력을 가리기 위한 시험이니만큼 문제가 어려워서, 공부한 만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좌절하는 응시자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실패의 원인이 대부분 영어로 귀결되어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공직임용 필기시험을 실시하는 목적은 ‘직무수행과 관련된’ 전문지식, 기본소양, 역사의식, 외국어능력 등을 평가하기 위함이다. 지금이라도 필기시험이 본연의 목적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면, 수험생들의 쓰라린 실패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가치 있는 경험이 될지 모른다.

< 출처 : 공무원저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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